역사는 종종 역사 속을 살고 있는 개인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체결됐지만 결과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가는 도화선이 된 뮌헨협정 역시 그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외교사에 있어서 최악의 협정 중 하나로 꼽는 뮌헨협정 오늘은 뮌헨협정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뮌헨협정을 맺은 이유
위는 협정은 무슨 이유로 맺었을까요? 이는 1차 세계 대전과 관련이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명목상으로는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여러 개의 신생 국가로 쪼개졌는데요 그중에는 체코슬로바키아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민족 자결주의 원칙이지만 실질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라 여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독일어를 사용하면서 주데텐란트라고 불리는 독일과의 경계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약 300만 명의 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인구의 4분의 1 정도에 해당했는데요 1933년 그러니까 히틀러가 총리로 집권한 해부터 이 지역에서는 콜라 드헬라이라는 인물이 수데텐 독일인당을 창당하고 지역 독일인들의 이익을 대표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계 국민들이 이 정당의 몰표를 주었기 때문에 수데텐 독일인 당은 1935년에 는 체코슬로바키아 전체에서 2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됩니다 한편 1938년 3월 12일에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독일 제국의 병합하는데요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지구인 3월 28일 히틀러는 방금 말씀드린 콜라 드헨 라인을 베를린으로 추천합니다 그리고 헬라 인으로 하여금 체코슬로바키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들을 요구하고 주문합니다 그중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의 자치권을 보장해달라는 내용도 있었죠 이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대두된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이용하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주데텐란트 지역의 문제를 국제적인 문제로 만들고자 했던 히틀러의 의도였습니다 이 무렵 각각 프랑스와 영국의 총리였던 에드와를 달랏 이에 와 네빌 체임벌린 은 혹시 모를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히틀러에 대한 유화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1차 세계대전에 과정에서 양국이 너무나 많은 피해를 받아썼기 때문입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가 특히 그러 있는데요 체임벌린 은 민족 자결 주의 원칙에 따라 자치권을 요구하는 주데텐란트 독일인들의 요구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원칙상으로 보면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체인 벌리는 히틀러의 요구가 주데텐란트에 그칠 것이라고 판단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합니다 즉 만약 주데텐란트가 독일에게 병합된다면 히틀러가 더 이상의 영토를 욕심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버린 것이죠 사실은 이 무렵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를 넘어 체코슬로바키아는 물론 프랑스와 영국을 침략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죠 한편 히틀러는 독일 언론으로 하여금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주데텐란트 지역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거짓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게 끔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독일 국민들을 자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적으로 슬로바키아 정부를 압박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이런 보도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주데텐란트 지역 독일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 국제사회에서의 명분을 가져갈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없죠 따라서 히틀러는 내심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양보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눈물
그러나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었던 에드바르트 펜의 쉬는 9월 4일 헨라인의 요구사항 중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겠다 고 발표했습니다 히틀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일주일 정도 후인 9월 12일 체코슬로바키아정부가 주덴테란트지역 독일인들을 박해하고 있으며 약 60만 명정도의 지역 독일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로부터의 위협을 받고 집을 잃었다고 발표합니다 뿐만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독일인들을 처형하고 있다고까지 말하죠 그리고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맹국이었던 어떤 프랑스의 한 장관이 우리는 독일의 경제와 산업을 쉽게 파괴하기 위한 폭탄 저장 기지로 써 체코슬로바키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사태가 일촉즉발로 치다를 위기에 처하자 9월 12일에 체인 벌리는 히틀러에게 연락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9월 15일 히틀러의 별장을 방문해 3시간가량을 논의 하지만 히틀러가 오히려 영국이 독일을 위협한다 고 언급하자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죠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간 이후 프랑스의 총리였던 달라디에 와 사태를 의논한 체임벌린은 결국 히틀러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9월 22일 다시 독일로 떠나고 히틀러에게 주덴테란트 지역에 대한 독일인의 권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고 전 합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일주일 사이에 체코슬로바키아 가 독일인들에게 행한 박해가 너무 심해졌다 며 체코슬로바키아가 자체를 해체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독일과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 에게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히틀러는 일부러 회담 중에 독일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학살당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게끔 명령에 놓는 등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꼼꼼하게 준비를 해놨습니다 그러나 회담이 잠시 중단되고 호텔로 돌아온 이후 자신의 요구 사항이 너무 과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 히틀러는 체임벌린에게 연락해 추덴테란트 만을 병합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 고 전합니다 그리고 주 탤런트 지역 이외의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대해서는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죠 그리고 24일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게 28일 오후 2시까지 주덴테란트 지역을 넘기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 지역을 병합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전합니다이고 28일 오후 10시 그러니까 4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영국은 이탈리아에게 부탁해 히틀러로 하여금 협상 기간을 24시간만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고 히틀러는 이를 수용합니다 이탈리아 요청을 받을 당시 마침 히틀러는 프랑스 대사와 회담을 나누고 있었는데요 그는 프랑스 대사에게 내 친구 무솔리니가 독일군의 친구 늘 24시간 만밀어 달라고 요청해 왔고 나는 동의했습니다 사실 이건 양보는 아닙니다 원래 진군은 10월 1일로 예정되어 있었거든요라고 말하죠 결국 24시간의 추가 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히틀러 체임벌린 달라디에 그리고 무솔리니가 뮌헨에 모입니다 그리고 새벽 1시 판에 독일이 10월 10일까지 주덴테란트를 점령하고 다른 논쟁이 되는 영토의 대해서는 국제 위원회를 결성에 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런 논의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는데요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게 연락해 뮌헨에서 의학적 내용을 받아들이거나 홀로 도끼를 침공해봤어 거나 양자택일을 하라고 전합니다 이를 전해 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베네시는 협정 결과를 거부할 시우리의 자결 권에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라고 밝히며 협정 결과를 수정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서막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에게 보내는 입장 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며 자신들의 신경을 분명히 밝혔죠 우리는 우리 없이 그리고 우리에게 반하여 맺어진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와서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결정은 우리에게는 걸맞지 않은 재앙입니다 우리는 승복하고 우리 민족에게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뮌헨에서 결정된 사항이 귀국들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후에 다른 이들도 피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베네시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며 10월 5일 사임했고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역에서는 뮌헨협정이 뮌헨의 배신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민은 협정은 발표된 직후 영국과 프랑스에서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임박해 보이던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체임벌린과는 달리 달라디엔은 개인적으로 협상의 결과물에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는데요 그는 체임벌린 과는 달리 히틀러의 야심이 주덴테란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위는 협정 이후 프랑스로 귀국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작 귀국길에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게 됩니다 이는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리고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당시 사회의 분위기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피했다는 시민들의 안도에도 불구하고 1939년 3월 15일에 히틀러는 주데텐란트 이외에 남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를 침공합니다 이는 주덴테란트이외에 체코슬로바키아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뮌헨협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었고 영국과 프랑스 에게도 더 이상 남은선 택지는 없었습니다 결국 세계는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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